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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경제및 돈벌이 관련

경영을 함에 앞서 감성은 금물

by 돈굴이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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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도주의를 버릴 것.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회사가 합병할 때 합병의 주도권을 쥔 측과 마지못해 합병을 당하는 측과는 합병할 때는 물론, 합병 후에도 그 입장을 달리 한다. 실제로 전후에 걸친 합병극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피 점령군의 굴욕은 샐러리맨에게 있어 참기 어려운 비극이다. 그러나 합병에서 주목되는 것은 합병회사보다 피합병회사의 종업원이 합병에 반대하는 사건이 야기되고 있다. 합병 결과 급료가 낮아지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예전에 닛산과 프린스가 합병을 내정, 그때의 합병조건은 닛산 1대 프린스 2대로 프린스는 완전히 닛산에게 흡수되게 되었다. 그러나 합병 내정 후 양사의 자산 내용을 재검토한 결과 프린스의 판매회사에 불량 부분이 많은 것이 드러나 합병조건은 1대 2.5로 정정되었다. 예를 들어 닛산주를 백 원으로 평가했을 경우 프린스 주는 80원인 셈인 것이다. 그러나 합병 즈음해서 프린스의 종업원이 맹렬히 반대했다. 프린스 노조가 내건 이유는 닛산은 프린스보다 임금이 적고 노동시간도 1시간이나 더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예는 도요 방직과 구례 하 방적이 합병했을 때에도 피합병자인 구례 하 측에서 일어났고 일본 제일의 택시회사임을 자랑하는 니혼 교통이 중소 택시회사를 합병했을 때에도 합병된 중소 택시 측이 임금이 높아 니혼 측은 그 해결에 고심했다. 닛산과 프린스가 합병했을 때 피합병자인 프린스 사장 오가와 쪽이 닛산 사장 가와마다보다 약자이고 마찬가지로 도요 방적과 구례 하가 합병했을 때에도 피합병자인 구례 하 사장 이토 교이치 쪽이 도요 방적 사장 가와사키에 대해 약자다. 그런데도 약자 사장이던 오가와와 이토 쪽이 종업원을 우대하여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 말은 즉 회사는 망하고 고임금만 남는다는 말인데 그야말로 현대의 톱 경영자가 기질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약자 사장은 인도주의적이어서 종업원들 편에 서는 요소가 많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반면 일상 경영에 진지한 면이 적고 특히 그 사업의 생산성을 무시, 경영자로서 임금 결정 같은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에 우유부단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사원들을 비극 속에 몰아넣는다.

 

2. 의리에 구애되지 말 것.

이와키 시멘트에서는 2대 사장 이와사키가 물러나고 상무인 사이토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와사키는 경영자로서의 수완은 모자랐지만 창업 사장인 이와사키 세이시 키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종전과 더불어 시멘트업계가 재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마당에서 2대 사장으로서는 난국 돌파가 어려울 것으로 간주되었다. 공장 대부분이 전화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시급한 채질 개선이 요구된 때문이다. 이때 상무 사이토의 분발을 촉구하는 소리가 사내에 높아갔다. 그러나 사이토는 금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부친 사이토 마쓰지 시절부터 창업자 이와사키 세이시 키에게 신세를 졌고 사실 그 인연으로 해서 이와키 시멘트에 입사하여 삼우의 자리에까지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2개 사장의 평판이 나쁘고 또 자신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소리가 높다고 하더라도 은인의 아들을 밀어내고서까지 스스로 권력을 쥘 결단이 사이토에게는 서지 않았다. 사이토는 말하자면 의리와 인정의 올가미에 걸렸다. 망성이던 사이토는 우선 사장을 설득해서 사업의 근본적 개선을 촉구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범인인 이와사키는 사이토의 건의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해하고 사이토를 멀리하려 했다. 이에 이르러 사이토는 마침내 생각을 달리했다. 이제야말로 의리에 얽매여 있을 때가 아니다. 회사의 존만은 오로지 2대 사장의 퇴진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사이토에게는 다른 중역, 특히 자신과 동기에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다카하시, 사나다, 요코이 등 상근 중역의 동향이 걱정이었다. 그들은 과연 나하고 의견이 같을까 하고 말이다. 자기가 차기 사장으로 취임이 되면 동기생들이며 라이벌인 그들과의 의사 통일이 당연히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사이토는 타진해 보았다. 그 결과 동기생 중역이 모두들 사장에게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고 사장과 가장 가까운 수석 중역인 다카하시까지도 그를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도 역시 사장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일에 이의가 없었다. 그것을 보고 사이토는 사장 취임의 결의를 굳히고 3명의 동료와 함께 일을 결행했다. 그때 사이토는 자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회사를 재건하는 일에 있으며 거기에는 털끝만 한 사심이나 야심이 없음을 맹세했다. 동시에 3명을 사장 다음에 가는 상무로 앉히고 자신을 포함한 4명의 월급과 보너스를 똑같이 할 것을 표명했다. 4명의 동기생 중에서 경영자로서의 수완은 사이토가 제일 뛰어난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다른 3명에게는 동기생 라이벌로서의 프라이드가 있다. 사이토는 요령 있게 그것을 활용하여 집단지도 제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라이벌을 자기편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와키 시멘트는 사이토가 사장 나머지 3명의 상무의 팀워크가 잘 짜여 운영 결국에 우수회사로서 탈바꿈하는 데 성공. 오노다, 니혼, 오사카, 우베를 뛰어넘어 일본 제일이라는 정평을 듣는 지치부 시멘트에 육박하는 정도로 성장하였다. 의리는 개인적인 의리와 사업적인 의리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리를 사업적으로 끌고 와서는 안된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개인적인 것들을 끌어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인 의리로 타회사와의 계약을 하거나 해서 회사에 이익을 남겨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업은 사업 이익을 남겨야 하는 집단인 것인데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개인적인 의리로 능력이 안되는데 입사를 시킨다거나 하는 것들이 횡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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