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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경제및 돈벌이 관련

경영할때 갖춰야하는 덕목과 하지말아야할것들

by 돈굴이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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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를 잊을 것.

일개 씨름꾼에서부터 분연히 일어나 이른바 억만장자로서 빛나는 기록을 남긴 사람이 오타니 요 네 타로이다. 불행하게도 만년에는 주업인 오타니 중공업에 파산 소동이 일어나 오점을 남겼지만 그래도 불세출의 위인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생애에서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항상 과거를 잊고 미래에 마음을 둔 그의 결단력이다. 오타니는 소학교를 졸업한 후 31세 때까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가 이대로 농사꾼으로 생애를 마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침내 상경, 토목꾼에서부터 시작해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직업을 바꿀 때마다 과거를 잊고 자기는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마음에 맹세했다. 완력을 밑천으로 씨름꾼이 되어 제2급에까지 승진한 일도 있다. 미국 순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 거기에 지원한 것도 씨름이 목적이 아니라 이 기회에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 눈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문명국의 실태를 될 수 있는 대로 보고 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행은 중지되었다. 그래서 깨끗이 씨름꾼을 단념하고 철강업자로서 재출발했다. 그때까지 근무한 점포가 자그마치 16개였다고 하는데 근무처를 바꿀 때마다 글을 모르는 오타니는 체험적으로 견문을 넓혀 갔다. 철강업자로서 출발했을 때에도 그야말로 어린애 소꿉장난 같은 조그만 공장에 불과했지만 천재의 직감력을 발동시켜 크게 돈을 벌었다. 그러나 화마로 인해 고생 끝에 이룩한 조그만 공장이나마 불태우고 말았다. 그러나 이에 굴할 오타니는 아니었다. 사 이타 현에 있는 친지 집에서 짐수레로 가득히 쌀과 밀가루를 사다가 거기에 수중의 1천 원을 활용 한 그릇에 50전씩 받는 쇠고기 덮밥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도쿄 료고쿠의 국기관에 피난민들이 들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상대로 하면 장사가 잘 되리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쇠고기 덮밥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그래서 번 돈으로 근처의 농가에서 쌀을 사들여 결국 되팔고 또 이익을 남기는 식으로 하여 오타니는 전직을 거듭할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억만장자의 길을 더듬어 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앞에 돈이 벌리는 사업이 흩어져 있어도 지금 벌리고 있는 사업에서 손을 떼고서까지 감히 거기에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과거의 즐거운 회상은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타니는 아무 미련도 없이 10여 회나 해치웠다. 만년에 이르러서 그는 호텔 뉴 오타니의 건설에 이어서 도쿄 도매 센터의 계획을 구체화하는 등 활동하다가 타계했다.

2. 허세를 부리지 말 것.

인간에게는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허세를 부리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결단 시에 허세를 부렸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 중에 도쿄 전력의 전 사장 아오키 긴 이치가 있다. 도쿄 전력에 석탄 독직사건이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장 다카이가 퇴진하고 부사장인 기가와 다도 상무로 격하되었다. 거기에서 후임으로 사장으로 발탁된 것이 문제의 시 나카와 백연와사장 아오키 긴이치였다. 당시 도쿄 전력의 자본금은 꽤 커서 시나카와 백 연와의 자본금은 도쿄 전력에 비해 50분의 1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전력이라 하면 기간산업이다. 그 도쿄 전력의 사장이라면 실로 두 계급의 특진으로 재계에서도 위세가 당당하다. 더욱이 부사장에서 상무로 격하된 기가와 다는 전력계의 황태자 고도 불리며 그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제쳐놓고 뛰어오른 사장 취임이고 보면 더한층 그 자리는 빛나는 것이 된다. 아오키의 뱃속은 물론 알 수가 없었지만 재계 측은 기가와 다를 이기려는 그 허세가 아오키로 하여금 도쿄 전력 사장 취임을 수락케 했다고 혹평했다. 결국 결과는 대실패였다. 매사에 기가와다를 의식 자기의 힘 이상의 것을 하려고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장이라도 50분의 1의 작은 배의 사장으로서는 아무리 선장 경력 20년이라고는 해도 도쿄 전력이라고 하는 큰 배의 키는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사장 취임 3년 만에 때마침 전기료 인상 문제를 직면하여 정치력이 희박한 아오키는 움쭉달쭉 못하고 암초에 부딪쳤다. 그래서 실력자인 기가 와다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3. 흉내내기를 부끄러워하지 말 것.

호외 팔이는 두 번째로 가야 잘 팔린다고들 하지만, 기업경영의 경우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라이벌 회사가 개발한 신제품을 차분히 연구 그 판매실적을 살펴본 다음에 천천히 손을 댄다. 그래서 천하의 전기회사가 마쓰시타 전기가 아니라 마네시타 전기다 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지만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자는 남의 흉내를 낸다는 비판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하다. 일본의 오토바이 왕으로서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일본의 혼다는 미국 남녀의 취미를 일변시킨 사나이다라고 말하게 하고 일본의 에디슨으로 까지 불리는 혼다 기연 사장인 혼다 소이치로도 근원을 캐보면 흉내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혼다 기연이 그 창업시대에 슈퍼 카브를 팔기 시작한 것은 유명하며 그 기술은 혼다의 독창적인 듯이 전해졌다. 그러나 실제는 혼다 이전에 마루 쇼 자전거가 베이비 라이라크호로 개발하고 다시 같은 시대에 독일의 크라이슬러사에서도 팔고 있었다. 그런 만큼 혼다는 초조했다. 그러나 혼다는 반대로 이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다시 마루쇼와 크라이슬러의 기술을 철저히 연구 그 장점과 단점을 배웠다. 그리고 이거면 충분하다는 데서 선발 메이커의 장점을 받아들인 슈퍼카브의 발매를 결의, 일사천리의 기세로 돌격을 개시했다. 그 결과 눈 깜짝할 사이에 시장을 석권, 혼다가 오토바이 왕을 과시했을때에는 마루쇼 자전거를 비롯, 오토바이의 선배 회사인 도쿄의 발동기도 메구로 제작소도 그를 전후해서 도산하게 되었다. 혼다는 항상 99%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에 비로소 진격을 결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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