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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경제및 돈벌이 관련

경영에서 조심하고 경계해야할것들

by 돈굴이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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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년의 결단을 경계할 것.

사람이란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누구나 결단에 혼란이 생기는 것 같다. 도큐 재벌의 총수로서 생전에 회사 신설, 합병, 강점 등 실로 종횡무진의 활약을 벌여 강도 게이 타라고까지 불림 며 만인의 두려움을 받던 고토 게이 타조 차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아니 그 강도 정신은 만년에 점점 더 현저해져 사실상 운명 직전의 병상에 누워서까지도 도요 정당의 탈취를 획책했다. 측근의 부하를 시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 실현을 추진시키고 있던 집념에 귀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써 정세는 일변했다. 2대째의 고토 노보루는 부친 게이타가 숨을 거두자마자 탈취의 야망을 포기하고 도요 정당 사장 아키야마 도시로와 화해, 만사는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그 이면에는 재계의 흑막적 존재인 고다마 요시오, 다이에이 사장 나가다 마사이치 등의 진력도 있었지만, 이 일로 해서 고토 노부로의 주가는 급등했다. 그것은 그 후 일시적으로는 정당 회사의 성적이 좋았지만, 이윽고 자유화에 부딪쳐 정당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제당업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곤경 속에서 재편성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토의 죽음이 좀 더 늦어져 강도 정신이 관철되어서 도요 정당을 비싼 값으로 탈취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날고뛰는 고토 게이 타라고는 하지만 태양이 서산에 기우는 것을 제지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큰 손해를 보아야 했을 것이다. 도요 정당 사건은 고토 게이타의 승리로 매듭지어졌다. 고토의 만년의 결단이 대실패를 유발한 예는 그 밖에도 많이 있다. 탈취 상습자인 요코이 히데키와 짠 시로키야 매수와 도코 백화점에의 합병, 도아 석유, 홋카이도 철도의 매수 등이 그것이다. 또 도큐 강철 파산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2대째 고토 노보 루이기는 하지만 애당초 그 실패를 부른 것은 역시 부친 게이타의 만년의 결단이다. 서비스를 주업으로 하는 전철, 백화점, 관광업 자임을 망각하고 전혀 생소한 자동차 업계에 욕심을 낸 것이 고토 게이타의 오산이었다. 고토는 도죠 내각의 운수 대신으로 취임했던 까닭으로 종전 후에 추방되어 도큐 재벌의 경영에서 떠났다가 다시 도큐의 상담역으로 되돌아와 다음 해 회장이 되어 문자 그대로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고토로서는 도큐는 자기가 창립하고 발전시킨 회사이며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관념이 강했다. 스즈키 고 오시 치, 오카와 히로시 같은 도큐 수뇌부들도 고토가 있음으로써의 자기라는 종속적 관념에 지배되어 아무런 참견도 할 수 없었다. 또 설사 참견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하나가 한낱의 티끌처럼 털려버리고 마는 상태였다. 그래서 고토는 그 만년에 정확한 판단력도 시대감각도 상실하고 있으면서 창업자로서 파죽지세를 보이던 무렵의 꿈만이 잊히지 않아 엉뚱한 착각에 사로잡혀 수많은 그릇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2. 실력 이상의 성과를 바라지 말 것.

어느 날 겐코가 주사위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주사위를 잘한다는 말을 듣게 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 명인이 말하길 이기려고 던질 것이 아니라 지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던질 일이다. 어느 손이든 빨리 지지 않을 손을 사용하지 말고 한 수라도 늦게 질 손에 의존하라고 대답했다. 결국 이기려고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어느 손을 써야 빨리 지는가를 생각하고 그 손을 되도록 늦게 사용하라고 한 셈이지만 겐코는 이것은 도를 아는 자의 가르침이며 일신의 수양, 또 국정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영도 또한 그렇다. 이기자, 성공하자는 의식이 너무 앞서면 반드시 어딘가에 무리를 범하게 된다. 지는 국면을 계산에 넣지 않기 때문에 실력 이상의 모험에 발을 들여놓을 위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야마이치 증권 사장 가다오카 하루지의 경영철학은 가르침을 준다. 야마이치 증권은 가다오카 다쓰지로라는 가부토 정의 실력자로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던 사람이 창업한 회사이다. 그러나 2대 사장인 가다오카 하루 지는 양자인 데다가 선대와는 달라서 성격적으로 산 말의 눈알도 뺀다는 가부토정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본이 정직하고 의리가 두터웠기 때문에 오히려 거래선의 신용은 절대적이어서 사업을 크게 성공시켜 왔다. 그것을 말해 주는 에피소드로 이런 것이 있다. 기차 속에서 주권을 훔친 사나이가 그 주권을 어디에 팔아먹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야마니 증권에 나타났다. 물론 그 사나이는 붙잡혔지만, 그때 가부토정에는 손님의 증권을 맡아서는 살짝 자기 것으로 하는 점포가 있었다. 그렇지만 야마니라고 하면 점포는 작지만 절대로 안심이라고 들었는데,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신용이 있기 때문에 증권계에 붐이 도래했을 때 야마니의 신용과 가다오카의 정직성에 착안하여 타사와 마찬가지로 적극 체제를 취하라고 유혹하는 소리가 회사의 안팎에 높았다. 특히 예의 억만장자로서 주식거래가 많았던 미나미 슌지, 기큐치 히로 자네 같은 예 강자가 가다오카의 보좌역이며 전무인 요코이 하루미를 통해서 가다오카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가다오카와 마찬가지로 견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증권계의 붐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리가 없다. 붐에 취해서 규모를 확대하면 당분간은 화려하고 종업원은 기뻐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야마니 같은 소규모의 회사가 몇 계단이나 뛰어넘어 실력 이상의 성과를 바란다면 반동이 왔을 때는 결정적 타격을 받는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다오카 등은 애써 고삐를 당겼다. 이것도 하나의 용단이었다. 그 후 대불황이 도래 그러나 야마니는 전기한 야마다네 증권과 마찬가지로 그 위치를 지켜 규모는 작으나 알찬 내용으로 호평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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