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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경제및 돈벌이 관련

경영을 할때 절대로 혼동해선 안되는것들

by 돈굴이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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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사를 혼동하지 말 것.

노무라 증권 사장 세가와 미노루가 젊은 비즈니스맨 시절에 단골 요정의 마담이 세가와에게 중역은 될 수 없겠지만 부장은 될 거라고 딱지를 붙였던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노무라 증권은 재벌의 직계 회사로서 사장, 전무, 상무는 친족관계에서 독점하여 친족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여간한 행운아가 아니면 중역은 바라볼 수 없었다. 샐러리맨의 최고는 부장이라고 정해져 있었다. 부장이라는 딱지는 당시의 노무라 사원에 대해서는 최대급의 찬사였다. 그러나 종전의 재벌 해체로 말미암아 노무라 일족은 퇴진, 당시 교토 지점장이었던 오쿠무라 쓰나 오가 사장에 취임, 이어서 세가와는 2대째의 사장이 되었다. 마담의 예상은 즐거운 오산으로 끝난 셈이지만, 세가와가 마담으로부터 부장의 딱지를 받은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세가와는 오사카 상대를 졸업 즉시 노무라 증권에 입사했는데, 입사하자 곧 지점장으로부터 샐러리맨 수업 기간에는 절대로 주석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증권회사의 샐러리맨에게는 직업상 유혹이 많다. 트기 경기 의 변동, 주가의 변동 주가의 기복 등으로 해서 하루의 피로가 다른 샐러리맨 보다 격심하다. 그 때문에 밤에는 기분풀이를 위해서라도 유흥가에 마음이 끌리기 쉽다. 그러나 세가와는 선배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켜 입사 후 5년간 절대로 주석에 나가지 않았다. 확실히 주석에서의 이야기 쪽이 거래를 스무스하게 진행시키고 비밀 정보를 포착하는 찬스도 있다는 이점은 있으나 그 이상으로 연석에서의 거래, 판단 등은 자칫하면 공사의 혼동에 빠져 결과적으로 보아 실패하여 후회하는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년후 세가와는 계장급으로 승진했다. 입장으로 보아 아무래도 연회에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때 세가와는 단골 요정의 마담에게 유흥비의 선불조로 보너스를 맡겨 버렸다. 순수한 사용으로 고객과 어울리는 경우와 개인적으로 즐기는 경우가 있다. 만일 이러한 범위를 혼동, 만에 하나라도 회사에 폐를 끼치는 것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사를 혼동한 결과 애석하게도 유망한 전도를 망친 샐러리맨의 예를 수없이 보아온 마담이 세가와에게 부장의 딱지를 붙인 것은 이때의 일이다. 뒷날에 세가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입사 후 5년간 주석에 나가지 않고 또 주석에 나가게 되고서부터는 반드시 보너스를 마담에게 미리 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업상 주석에서 속전속결의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남이 내는 주석에서는 자칫하면 인정에 끌려가기 쉽게 된다. 나는 그것을 피하려고 적은 급료 중에서도 내 돈으로 술을 마신 것이다. 덕택에 공사의 구별이 확실해지고 결단에 큰 혼란을 일으키지 않아 사장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이 교훈을 지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2. 장사와 취미를 혼동하지 말 것.

과거에 부슈 철도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다카시마 소이치로라는 무명의 불실 업자가 중앙선의 미 다카 역 으로부터 지치부 철도의 오하 나바 다케를 연결하는 전장 약 62km의 철도건설을 계획했다. 그 자금조달을 위해서 다카시마가 착안한 것이 사이다마 은행장 히라누마 야타로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부정융자 사건으로 적발되고 다시 당시의 운수 대신 나라하시 와다루의 독직사건으로까지 발전했다. 사이다마 은행은 사아다마현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이지만, 그 자금량이 풍부해서 다카시마가 건설자금을 끌어내기에는 안성 맞춤의 상대였다. 그러나 다카시마는 일개 불실업자이다. 보통 수단으로는 히라누마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상대인 사이다마 은행은 히라누마의 원맨 은행인 것이다. 히라누마를 설득하지 않는 이상 자금조달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 다카시마가 들은 것은 히라누마의 신앙과 취미를 상징하는 나구리 관음의 건립계획이었다. 히라누마는 젊었을 때부터 조각에 취미를 가져 다이고쿠사마등을 조각, 단골 손님이나 지기에게 기증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취미가 심해져서 나구리 관음의 건립계획에까지 발전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죽은 모친에게 추모에서였지만 산조법사의 영골을 모시고 그 건물은 철근으로 지하1층,지상 3층으로서 영골탑을 만든다는 호화판이었다. 그런데 나구리 관음 건립의 계획을 안 다카시마는 히라누마에게 접근하여 기증을 하기도 했다. 이때 히라누마가 총애하는 중을 다키시마가 구슬려서 접근했다고도 한다. 물론 다키시마뿐이 아니라 후지 새시공업 사장인 사노 도모지라든가 다이에이 사장 나가다 마사이치라든가 사이다마 은행과 거래관계를 가진 많은 재계인이 돈을 모아 기증했다. 원맨 사장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다키시마는 보기좋게 히라누마 설득에 성공, 당시 표면화된 바에 의하면 히라누마는 다키시마가 가진 산림을 고액으로 평가 그것을 히라누마와 관계가 깊은 하쿠운 관광에 사게 했다. 또 다키시마의 부슈 철도 건설계획에 히라누마 자신도 발기인이 되고, 다시 아우와 사위까지 참가시켰다. 그러나 이 건설 계획의 결함이 공청회의에서 폭로되어 운수대신 나라하시 와다루에 대한 정치 현금까지 드러났다. 사건의 표면화하자 히라누마는 세상에 대해 자신은 신앙이나 취미를 은행융자와 혼동하지는 않았다고 공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변명이다. 결과적으로 히라누마는 신앙과 취미를 거래와 혼동, 다키시마의 교묘한 술책에 빠져 경솔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히라누마 자신 사직당국에 체포되어 가련하게도 은행장 실각이라는 경영자로서의 최대의 오점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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