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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경제및 돈벌이 관련

경영을 물려받으면 주의할 사항

by 돈굴이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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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임자의 입김이 밴 사람은 제거할 것.

1945년 12월 사쿠라다 다케시는 마흔 한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닛싱 방적의 사장에 취임했는데, 그 직후 가장 감격한 일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쿠라다는 당시의 닛싱 방적의 회장 미야지마 세이지로에게 발탁되었는데, 그 임명에 즈음하여 미야지마는 "이번에 당신을 사장으로 임명한다. 사장이 된 이상 열심히 힘써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전무 이하의 중역은 모두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선발하는 게 좋겠다. 당신한테 불편한 사람은 나하고 같이 그만두게 할 테니까" 하고 말했다. 이 한 마디뿐이었다. 40세 안팎으로 사장에 발탁된 것도 고마웠지만 이 한 마디에는 각별히 감격, 용기백배하더라라는 것이다. 사실 새 사장을 맞아 재출발을 기해도 전임자의 입김이 밴 중역들이 남아 있는 상태로써는 실질적인 개선이 이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 간부로는 새 사장의 방식에 따라갈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 또 새 사장에 대해서 적의를 품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형편이 불리하다. 이래저래 정확한 정보나 의견의 교환에 차질을 가져오고 그 결과 새 사장은 구 중역들이 마음대로 갖고 노는 인형 같은 존재로 전락하여 구태의연한 상황이 계속되고 만다. 일꾼인 미야지마는 무엇보다도 이 점을 배려해 사쿠라다의 뜻대로 중역 인사를 감행케 하였다. 그래서 사쿠라다는 미야지마의 말대로 많은 전임자를 자르고 젊은 부장 중에서 자기가 신임하는 자를 상무이사에 앉혔다. 그 결과 사쿠라다는 종전 후의 혼란기에 사장의 중책을 짊어지고서도 신임 상무, 이사 들과 일치단결하여 훌륭한 업적을 올렸다. 사쿠라다와는 정반대로 도큐의 창업자 고토 케이타가 사망한 뒤 2대째 사장인 고토노 보루가 우선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은 아버지 게이타가 벌여놓은 팽창정책의 뒤처리였다. 당시의 돈으로도 큰 규모의 신규 계획의 선후책으로써 그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속을 썩인 것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인간이었다. 아버지의 입김이 밴 무리들 가운데에는 모사형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만큼 아버지의 죽음을 전기로 해서 새 시대의 경영자로서의 재출발을 의도한 2세에게 있어서 그것은 큰 장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었다고 해서 무정하게 결별해 버리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마음에 없으면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부친의 생존 시와 같은 지위에 앉힌 채 경영을 함께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원만하게 퇴직시키기까지에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2. 친족 이외의 중역의 의견을 존중할 것.

일본 제일의 수산 회사임을 자랑하는 다이요 어업은 소위 가족회사로서 수뇌부의 거의가 나카베 일족이다. 사장 나카베 젠키지 밑에 부사장 리사부로, 상무 신지로, 이사 겐지로, 조지로 라는 식으로 나카베 성이 즐비하고 그 밖에도 다른 친족을 사내에 박아놓고 있다. 친족이 아닌 주된 중역이라고는 고깅 출신인 부사장 다케우치 한쥬 정도로 그야말로 친족 일색이었다. 가족회사는 어디를 막론하고 비난이 많다. 기업이란 것은 본래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인데, 그것이 가족회사가 되면 다분히 사유화의 경향을 띠게 된다. 그리고 사유화가 진전되면 회사조직의 이익과 친족의 이익이 충돌하여 경영상 여러가지 문제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가족이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친족 이외의 사람은 언제나 냉대를 받고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사내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안되어 사원의 사기는 저하되고, 경영은 일족의 독단행위에 맡겨져 부패의 도를 더해 간다. 그 결과 파멸 이라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다이요 어업도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특히 2대 사장 나카베 겐키치에게는 다이요 어업은 내 회사다.라는 의식이 강했는데 그의 독단적인 태도는 이를테면 나카베가 중역회의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나는 ....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말을 꺼냇을 때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례로 엔스 이코 정당 사장인 야마가다 아키라와 제휴하여 사탕 사업에 손을 댔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때만 해도 그렇다. 나카베는 야마가다와 20~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만사 오케이 해 버렸다. 그리고 친족이 아닌 부사장 다케우치 한쥬에게 "엔스이코하고 제휴해서 사탕에 출자하고 싶은데..." 하고 우선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카베가 말을 꺼냈을 때에는 이미 절반 이상은 결정된 거나 다름없으며, 상담이라는 것은 그거 이름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다케우치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전에 나카베의 결정에 이의를 내세웠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케우치 이외의 중역은 거의가 친족이었기 때문에 변변히 보고도 듣지 않은 채 사장의 독단을 무조건 승인해 버렸다. 나카베는 언젠가 "학문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머리에 넣고 있다가 언제든지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도 그때그때 자기의 오랬동안의 육감을 발동시킨다든가 적당한 경험을 활용하는 편이 유용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재권을 멋대로 행사하면서 친족 이외의 중역이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좋다고 할 수 없는 나카베와 같은 경험주의 일변도로는 결단이 변하여 독단으로 떨어지는 위험이 따른다. 비단 회사 경영뿐만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떤 조직에서든 친족 운영을 하면서 친족 이외의 사람들의 의견을 경시하거나 외면하게 된다면 갖은 부패와 독단의 길로 빠질 위험이 있으며 그것은 곧 파멸로 이끌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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