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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경제및 돈벌이 관련

결단이 필요한 경영사례

by 돈굴이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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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보다 실속을 취하라

이와키 시멘트가 스미토모 시멘트로 개칭, 스미토모 재벌의 직계 회사로서 재출발했을 때, 시멘트계는 물론 일반 산업계에도 커다란 쇼크를 주었다. 이와키가 창립된 오랜 역사를 지닌 회사인 데다 종전 후 현 사장인 사이토 지로의 시대에 접어든 이후, 업태가 두드러지게 개선되어 치치부 시멘트에 버금 가는 우수한 회사로서 실제 3할 배당을 여유가 있게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적으로도 고깅, 미쓰비시 미쓰이 신탁 등에서 그 신용은 절대적이어서 금융 측에서 눈치를 봐야 할 형편에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금융적으로도 거래상으로도 관계가 없는 스미토모 재벌의 직계 회사로 변신 사실상 팔아넘긴 형태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상이 판명되자 사장 사이토 지로의 현명한 결단이 높이 평가된다. 그것은 수년 전부터 스미토모 석탄과 스미토모 기계가 중심이 되어 동북지방에 시멘트 진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스미토모 은행이 있고 또 계획 자체도 원료 석회석의 공급도 순조로우며 최신식 설비를 갖춘 규모도 기존 이와키의 아성을 위협하였다. 사이토는 고민했다. 이와키가 가진 실력, 신용으로써 스미토모의 시멘트 계획과 대항했을 경우 상당 기간 싸울 자신은 있었다. 동시에 여론도 재벌의 횡포 운운으로 기울어 당분간은 자사에 유리하게 전개되리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기 항전의 자신이 없었다. 상대는 실력 넘버원으로 특히 전통적으로 결속이 공고함을 자랑하는 스미토모이다. 게다가 스미토모의 진출 계획은 착실하며 주먹구구식이 아니었다. 이와키가 항전하더라도 스미토모가 진출 계획을 포기한다는 따위의 일은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 사이토의 가슴에 번뜩인 것은 자사가 가진 임원 간부의 진용이었다. 그것은 상당한 인재를 포옹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도 있었지만 온상적인 결함도 느껴졌다. 동시에 동북지방이 안고 있는 숙명적인 수요의 격차가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하물의 이동이 침체하는데 그런 신진 재벌계 회사와 대전했을 경우 어떤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인가, 과거의 역사가 여실히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토는 이름에 연연하기보다 실속을 차리자라고 결심, 직접 스미토모 은행장인 훗다 쇼조를 만나고 다시 스미토모 석탄, 스미토모 기계의 수뇌부와 만나 여러 가지를 절충한 결과 스미토 모계의 시멘트 회사와 자진해서 합병, 합병 후의 이와키 시멘트를 스미토모 시멘트로 개칭하게 함으로써 원만히 타결했다. 즉 이름을 버리고 실속을 잃지 않았다. 개칭 후에도 계속 사이토는 사장으로 눌러앉아 다시 더욱 업적을 올린다. 사이토가 실속보다 이름에 연연했더라면 이런 결단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사이토에게 스미토모가 싸우라고 충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이토의 임기응변의 조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2.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지 말라.

직업상 지방에 강연을 나가면 토건업자 등으로부터 제멋대로 직함을 박은 명함을 받게 된다. 본인은 자랑스러운 것이겠지만, 절대로 신용할만한 것이 되진 않는다. 그러한 사장일수록 오래지 않아 도산의 비극에 직면하고 있는 예가 지겨우리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갈이 직함에 정신을 팔고 있는 경영자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간이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사업을 해치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두 마리, 세 마리의 토키를 동시에 쫒으면 도리어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결단 시에 당면해서 자기의 힘을 과신한다든가 혹은 우유부단해서 마침내 두 켤레, 세 켤레의 신을 한꺼번에 신어버리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희대의 명경 영자로 꼽을 수 있는 도요 레이온 회장인 다시로 시게키마저도 올림픽 부회장으로 취임해서 활약하다 보니까 본거지인 도요 레이온이 불황 때문에 비상시에 직면했을 때 사태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해 몹시 땀을 흘렸노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자면 도에이 사장 오카와 히로시의 경우다. 오카와는 전성시대에 오분샤, 니호 단파방송, 도쿄 타임스와 공동으로 니혼 교육 텔레비전을 창립 사장이 되었지만 그 독단 전횡 때문에 오분샤 사장 아카오 요시오의 강렬한 지탄을 받고 퇴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오카와가 통감한 것은 자기가 교육 텔레비전의 사장을 겸하고 있는 사이에 본가인 도에이의 업적이 악화,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사실이다. 거기에서 새삼스럽게 두 마리의 토끼를 쫒는 위험을 통감, 크게 반성하고 도에이 재건에만 전념했다. 그에 덧붙여서 두 켤레의 신을 신음으로써 실패한 경영자의 생생한 예로써는 참의원 의원, 도와 화재 사장, 고베 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던 오카자키 싱 이치를 들 수 있다. 오카자키는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직함을 모두 버렸다. 이런 점에서 일인일 업주의에 투철함으로써 결단에 혼란을 보이지 않는 대표자는 닛싱 제분 사장 쇼다 히데사부로이다. 닛싱 제분은 아버지 쇼다 데이 치로가 일인일 업주의에 의해서 쌓아 올린 우수한 회사이다. 동업인 니혼 제분, 쇼와 산업, 닛도 제분의 당국자가 원료 소맥에 대한 시세 판단이라든가 신분에 맞지 않는 다각화로 실패하고 있는데 비해 닛싱 제분은 견실경영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재계에서의 신용도 절대적이었다. 그런 만큼 종전 직후 2대째 쇼다 히데사부로에게는 본업 이외의 명예 직격인 포스트에의 권유가 쇄도했다. 이른바 2대째라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응하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쇼다는 새삼스럽게 본업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동시에 동업 타사를 보고 다시 선진국의 동업 타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본업 이외에 외도를 할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모든 권유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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